[대전인터넷신문=최대열기자] 전교조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132개 시민사회단체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제작 중인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다시 포함하고 삭제 경위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인권·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제작 중인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포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기자회견 주최측 제공]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등 132개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제작 중인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빠진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가이드북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사건 등을 계기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혐오·차별 표현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가 제작을 추진한 자료다.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혐오·차별 표현 예방·대응 안내서’ 초안을 참고해 가이드북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통해 교육부가 만든 가이드북에서 서울시교육청 초안에 포함됐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성소수자’, ‘커밍아웃’, ‘아웃팅’ 등의 설명이 빠진 사실이 알려졌다. 성소수자 학생이 겪을 수 있는 혐오·차별 사례와 학교의 대응 방법도 제외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가이드북 검토에 참여한 전문가 7명 가운데 6명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제외된 안에 문제를 제기하며 검토진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은 이날 “교육부의 최종안을 검토한 전문가 7명 중 6명이 ‘이 지침이 혐오 대응 취지를 훼손한다’는 취지로 검토진에서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검토진에서 이름을 삭제해 달라는 것은 매우 강하고 이례적인 요구”라며 “가이드북이 이대로 발간된다면 혐오·차별을 예방·대응하는 안내서로서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혐오·차별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빠진 배경에 대해 시도교육청의 의견을 고려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관련 언론 취재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경우 “반대 민원 등으로 학교 배포가 부담스럽다”는 시도교육청의 입장이 있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가이드북을 곧바로 확정·배포하지 않고 추가 검토에 들어갔다. 시민단체가 공개한 경과보고에 따르면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는 지난 8월 31일 전교조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띵동, 무지개행동 관계자와 일부 검토위원을 만나 관련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교육부는 앞서 회람됐던 자료가 아직 제작 과정에 있는 파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내용을 확정한 뒤 제작을 마무리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면담에 참석한 시민단체와 검토위원들은 최종 가이드북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132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교육부는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에서 삭제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즉시 복원하라”며 “해당 내용 삭제의 경위와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단체들은 특히 학교 현장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혐오·차별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관련 내용을 가이드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5년 실시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는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 455명과 성인 성소수자 당사자 2,4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청소년 응답자의 71.1%가 교사로부터, 87.0%가 또래 학생으로부터 편견이나 혐오에 기댄 표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교조 김지연 부위원장은 학교 현장에서 혐오·차별 표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교사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교육부는 당장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라인에 성소수자 표현을 수정·추가하고, 당사자 집단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박한희 공동대표도 “성소수자 내용을 삭제하는 결정에 이른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혐오에 동조한 것에 사과를 하라”며 “지금 당장 성소수자 내용을 가이드북에 포함시키라”고 촉구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은 최근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혐오표현 피해 사례와 교육당국에 전달하고 싶은 요구사항을 수집한 결과, 조사 시작 나흘 만에 160여 명의 사례와 의견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접수된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소개됐다. 한 청소년은 “저희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학생이라는 것을 인지해 달라”며 “저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들은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가이드북에 다시 포함하는 것과 함께 관련 내용이 제외된 경위와 진행 과정 공개,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
다만 논란이 된 가이드북은 현재 최종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교육부가 발표를 보류하고 추가 의견수렴과 검토에 들어간 만큼 향후 확정본에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내용과 학교 현장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어느 수준까지 반영될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