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세종/최대열기자] 정부가 지난 15년간 식량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해외농업자원개발기업에 2천억 원 넘는 자금을 지원했지만, 절반 이상이 폐업하거나 휴업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업을 집행한 한국농어촌공사가 실적 관리와 사후 점검을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실패는 있을 수 있으나 무책임은 용납될 수 없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5년간 식량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해외농업자원개발기업에 2천억 원 넘는 자금을 지원했지만, 절반 이상이 폐업하거나 휴업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농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국민적 지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인터넷신문]
해외농업자원개발사업은 2009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식량위기 대비와 해외 식량자원 확보를 목표로 시작한 국책사업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집행기관으로 참여해 민간기업에 저리 융자를 제공했지만, 정작 사업의 성과는 초라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5년간 50개 기업에 총 2,137억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중 절반인 25개 기업이 폐업 또는 휴업 상태이며, 나머지 기업들도 실질적인 곡물 반입 실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초기부터 부실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일부 기업은 사업계획서만 제출하고도 융자금을 받아 갔고, 현지 인프라 조성이나 농지 확보는커녕 자금 사용처조차 불투명한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농어촌공사는 사후 점검 없이 예산을 계속 집행했고, 사업이 중단된 후에도 일부 기업을 ‘계속사업자’로 분류한 채 방치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사는 돈을 빌려주고 관리 책임은 기업에 떠넘겼다”며 “사업이 실패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해외농업자원개발 융자금은 현지 영농비, 토지 임차, 농기계 구입, 유통·저장시설 구축 등 생산 인프라 조성을 위한 용도로 쓰여야 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이런 용도 외의 자금 흐름을 명확히 소명하지 못했고, 회계 점검도 부실했다.
더 큰 문제는 회수 조치의 부재다. 농어촌공사는 「농식품산업 해외진출지원자금 융자 및 채권관리 지침」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회수 실적이 거의 없었다. 많은 기업이 실적 없이 폐업했음에도 담보 환수나 청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회수율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농식품정책학회 관계자는 “공사가 자금을 집행하고도 이후 관리·감독을 포기한 것은 제도적 직무유기”라며 “성과가 없는 기업뿐 아니라 관리기관에도 명확한 행정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패는 있을 수 있지만, 무책임은 안 된다”
전문가들은 “사업 실패는 있을 수 있으나,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농업개발처럼 대규모 공공 융자사업의 경우, 단순 행정착오가 아닌 관리 소홀·감독 부재에 따른 손실이 명백할 때는 구상권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자금을 부실하게 관리하거나 명백한 관리 태만으로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내부 감사나 법률 검토를 거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특히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면 기관뿐 아니라 담당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임미애 의원은 “정책 실패 자체는 용인될 수 있지만, 아무런 점검도 없이 예산을 흘려보낸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성과 평가, 환수 시스템, 책임 규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 회피 구조의 해체 필요성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어촌공사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농림부는 “정책 방향 제시만 담당한다”고 해명했고, 농어촌공사는 “우리는 집행기관일 뿐 관리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사이 국민 세금만 사라졌다”며 “양 기관 모두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감사원은 과거 유사 사례에서 “부처와 공공기관이 역할을 분리해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 자체가 반복적인 예산 낭비의 근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해외농업개발사업 역시 같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안 및 개선 방향
전문가들은 해외농업개발사업의 구조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성과 기반 지원체계를 도입해 실질적 반입 실적을 기준으로 자금을 지급해야 한다. ▲둘째, 공공-민간 공동투자형 모델로 전환해 정부의 ODA(공적개발원조) 자금과 연계, 책임 있는 협력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사후평가 및 구상권 제도화를 통해 부실 관리나 감독 소홀로 인한 손실에 대해 명확히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장기적으로 국가식량자원청(가칭)을 신설해 해외농업개발·식량비축·국제협력을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번 해외농업자원개발사업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책임 없는 행정의 결과라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사업의 실패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실패에 대한 책임이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구조다.
임미애 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추진된 사업이라면 실패에도 책임이 따라야 한다”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스스로의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면, 구상권 청구 등 강경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사업이 실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관리기관이 아무 점검도 없이 세금을 흘려보내는 일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재정의 책임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