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최대열기자] 정부가 임차인의 전세금을 공적 기구에 맡겨 보증금 반환 위험을 낮추고 월세주택을 전세로 전환하는 ‘전월세 안심신탁’을 연말 도입한다. 임차인의 주거비 절감이 기대되지만 임대인에게 지급할 수익률로 검토 중인 연 4~5% 수준이 충분한 참여 유인이 될지가 제도 안착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연말 도입을 추진하는 ‘전월세 안심신탁’은 임차인이 전세금을 안정화기구에 전액 예치하면 기구가 이를 운용해 임대인에게 수익을 지급하고 계약 종료 후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반환하는 구조다. 사진은 전월세 안심신탁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AI 이미지. [그래픽·이미지=대전인터넷신문·AI 제작]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 후속조치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전월세 안심신탁’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전월세 안심신탁은 시중의 월세 물건을 전세로 전환해 공급하는 새로운 형태의 임대차 방식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금 예치·운용·반환과 임대인·임차인 모집 등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다.
사업 구조는 기존 전세와 차이가 크다. 안정화기구와 임대인, 임차인이 3자 약정을 체결하고 임차인은 전세금 전액을 기구가 지정한 계좌에 예치한다. 기구는 이를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임대인에게 매달 지급하고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반환한다.
일반적인 전세계약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지급하고 계약 종료 때 임대인에게 돌려받지만 안심신탁에서는 임대인이 전세금을 직접 보유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대신 매달 약정된 운용수익을 받는다.
정부는 공적 기구가 전세금을 직접 관리하고 반환을 책임지는 만큼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차인은 별도의 전세금반환보증과 전세대출보증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 보증료 부담도 줄어든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임차인의 주거비 절감 효과도 정부가 내세우는 핵심 장점이다. 정부는 매매가격 3억원, 전세금 2억원인 서울 연립·다세대주택을 사례로 들었다. 기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74만원을 내던 임차인이 안심신탁을 이용해 전세로 전환하는 경우다.
전세금 2억원 가운데 80%인 1억6천만원을 전세대출로 조달하고 2026년 5월 신규취급 평균금리 3.97%를 적용하면 월 이자는 약 53만원이다. 기존 월세 74만원보다 월 21만원가량 부담이 줄어든다.
일반 전세에서 필요한 보증 관련 비용도 줄어든다. 정부는 같은 사례에서 전세금반환보증과 전세대출보증에 가입하지 않아도 돼 연간 약 34만원의 보증료를 추가로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주택가격과 전세금, 대출비율, 대출금리 등을 가정한 정부의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임차인의 절감액은 주택과 대출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임차인이 이 같은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임대인이 자신의 주택을 안심신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세금을 직접 활용할 수 없는 임대인이 안정화기구가 지급하는 수익만 받는 조건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제도의 실효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예치된 전세금 등을 기반으로 ‘주택공급활성화펀드’를 조성하고 주택건설사업장에 HUG 보증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운용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정부가 사업 기대효과를 산출하면서 적용한 임대인 수익률은 연 4.35%다. 전세금 2억원에 4.35%를 적용하면 연간 870만원, 월평균 72만5천원으로 정부가 제시한 월 약 73만원과 일치한다.
그러나 4.35%는 확정 수익률이 아니라 정책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최인호 HUG 사장은 관련 브리핑에서 임대인에게 지급할 수익률을 계약기간 연 4~5% 사이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정확한 기준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9월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사례에서는 기존 보증부월세가 보증금 1천만원에 월 74만원이고 안심신탁 예상 수익은 약 73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월세 연체 위험을 줄이고 일정 범위에서 공실에 따른 수익 감소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원하는 임대인에게는 참여 유인이 될 수 있다.
반면 실제 임대차시장의 전월세전환율이 안심신탁 수익률보다 높은 지역에서는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 전세금 2억원을 기준으로 전월세전환율을 단순 적용하면 연 5%는 월 약 83만3천원, 6%는 100만원, 7%는 약 116만7천원에 해당한다. 연 6%를 적용하면 정부가 예시로 든 연 4.35%의 월 72만5천원과 비교해 월 약 27만5천원, 연간 약 330만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물론 전월세전환율을 임대인의 실제 투자수익률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보증금과 월세 규모, 공실기간, 세금, 관리비용 등 실제 계약조건에 따라 실질 수익은 달라진다. 다만 안심신탁 약정수익률과 지역 임대차시장의 전월세전환율 격차는 임대인이 참여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국토부 자료에서도 지방의 전월세전환율은 서울·수도권보다 높은 경향을 보인다. 지방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2021년 4.8%에서 올해 5월 5.7%로, 단독주택은 같은 기간 8.3%에서 8.9%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최종 약정수익률이 전국적으로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경우 전월세전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방이나 비아파트 시장에서는 임대인의 참여 유인이 수도권 일부 시장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수익률만으로 제도의 유불리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안심신탁에 참여하면 임대인은 월세 연체 위험을 줄이고 일정 범위에서 공실에 따른 수익 감소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등록임대사업자는 임대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의무가 면제돼 보증료 부담도 줄어든다. 정부는 참여 임대인의 소득에 대한 세제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세제지원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현재 단계에서 임대인의 확정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전세금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임대인의 선택을 가를 변수다. 안심신탁은 보증금 전액 예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 전세처럼 임대인이 받은 전세금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다.
정부도 전세금을 주택 구매, 이른바 갭투자 등에 활용하거나 고수익 위험자산에 투자하려는 임대인은 참여 유인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대로 공실이나 연체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월 수입을 원하는 임대인이나 전세금을 정기예금 등 안정적인 자산에 두던 임대인이 주로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기존 전세주택까지 안심신탁 참여가 확대될 경우에는 종전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재원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임차인에게 전세금 2억원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임차인이 안심신탁을 통해 같은 2억원을 예치하더라도 이 돈은 임대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안정화기구가 관리한다.
새 임차인의 보증금을 종전 임차인 보증금 반환재원으로 활용하는 임대차 관행과 달리 안심신탁에서는 새 임차인의 전세금을 임대인이 직접 사용할 수 없는 만큼 기존 보증금 반환을 위한 별도의 자금조달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이번 사업의 기본적인 정책 대상으로 제시한 것은 기존 전세주택의 전환보다 ‘시중의 월세 물건을 전세로 전환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존 전세주택까지 사업 참여가 확대될 경우 종전 임차인 보증금 반환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향후 사업 세부설계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전세금 운용의 안전성도 제도 신뢰와 직결된다. 정부는 예치된 전세금 등을 주택공급활성화펀드로 조성해 HUG 보증부 PF 대출 등에 운용하면서 연 4%대 이자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안정화기구의 투자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임차인의 전세금은 전액 보장되고 임대인에게 지급되는 월 수익도 정상적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의 전세보증금을 투자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인 만큼 실제 운용수익이 약정수익률에 미치지 못하거나 투자손실이 발생했을 때 어떤 재원과 구조로 이를 보전할지는 사업의 안정성을 판단할 핵심 요소다.
또 계약 만료가 특정 시기에 집중돼 대규모 보증금 반환 요구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유동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보증금 전액 반환을 책임지는 만큼 보장 원칙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재원과 위험관리 구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HUG는 원금 보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초기에는 HUG 보증부 PF 등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은 자산을 중심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펀드 운용 방식과 위험관리 기준은 사업공고 과정에서 보다 명확해질 전망이다.
사업 참여 문턱은 비교적 낮게 설계됐다. 소득과 자산 제한 없이 참여를 원하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신청할 수 있고 지역이나 주택 유형에도 별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시세 20억원 이하 주택부터 우선 시행하고 위반건축물 여부와 시세 대비 과도한 전세금 설정 여부 등 기본적인 검증을 거친다. 보증부월세도 참여할 수 있다. 보증금과 월세를 전세금으로 환산한 금액이 적정 전세가 이내이면 신청할 수 있지만 보증금 전액 예치를 전제로 한다.
정부는 올해 LH 매입임대주택 일부 500호도 안정화기구를 통해 시범 공급해 무주택 청년 세대의 주거부담을 낮출 계획이다. 임대인이 먼저 참여를 신청한 뒤 기구가 임차인 모집을 지원하는 방식과 임대인·임차인이 전세금 수준을 사전에 협의한 뒤 함께 신청하는 방식을 병행한다.
구체적인 사업절차와 약정서, 최종 수익률 등은 9월 말 사업공고를 통해 공개한다. 10월부터 신청을 받고 11월부터 순차적으로 3자 약정과 계약금 예치를 진행한 뒤 연말부터 입주를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임대인에 대한 주택연금 연계도 추진한다. 정부는 수도권 베이비부머 등이 보유한 주택을 전세물량으로 전환하면서 지방 이전과 고령층 노후소득 확보를 동시에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앞으로 전월세 안정화 기구를 통해 임차인은 전세금 반환 위험을, 임대인은 월세 연체 부담을 내려놓고 임대차계약을 안심하고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전월세 안심신탁 사업이 성과를 내고 더욱 고도화되면 임차인은 전세 거주 효과, 임대인은 월세 수익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재 방식뿐만 아니라 임대차시장 건전화를 위한 다양한 계약 방식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월세 안심신탁은 전세사기로 불거진 보증금 반환 위험을 공적 관리로 낮추면서 빠르게 진행되는 전세의 월세화에 대응해 전세 공급을 늘리겠다는 새로운 시도다.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안전성과 주거비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민간 임대차시장에 실제 안착할지는 결국 주택을 내놓는 임대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세금을 직접 활용할 수 없고 지역에 따라 시장의 전월세전환율보다 낮을 수 있는 수익을 감수하는 대신 안정적인 월 수입과 연체·공실 위험 완화, 보증료 절감과 향후 세제지원 등을 선택할 임대인이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다.
특히 전월세전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방에서는 9월 결정될 최종 약정수익률이 임대인 참여를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기존 전세주택의 보증금 반환재원과 전세금 운용손실 및 대규모 반환 요구에 대비한 안전장치까지 구체화돼야 한다.
결국 오는 9월 공개될 최종 약정수익률과 세제지원, 보증금 반환·운용 안전장치, 그리고 연말 시범사업에서 확인될 민간 임대인의 실제 참여 규모가 ‘전월세 안심신탁’이 새로운 임대차 모델로 자리 잡을지, 제한적인 정책상품에 머물지를 가를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