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최대열기자] 돌발 행동을 보이는 원아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세종시 한 유치원 교사가 사건 발생 3년여 만인 19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19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세종 유치원 교사의 항소심 무죄 선고를 환영하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대전지법 제4형사부(구창모 부장판사)는 이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치원 교사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육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교사가 상당한 정도의 재량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재량의 행사 범위에서 범죄 구성요건인 고의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23년 6월 세종시 한 유치원에서 발생했다. 전교조가 공개한 사건 경위에 따르면 당시 6세 원아가 다른 원아와 이른바 ‘체리 반지’를 두고 다툰 뒤 울면서 교실 문을 막고 식사를 거부하는 등 돌발 행동을 보였다.
교사 A씨는 식사를 지도한 뒤 오전에 발생한 행동에 대해 원아를 훈육했고, 이 과정에서 원아가 양팔을 휘두르는 등 과격한 행동을 반복하자 “그만, 그만”이라고 말하며 양 손목을 붙잡아 제지했다.
사건의 최초 신고는 원아 얼굴에서 발견된 멍에서 시작됐다. 전교조에 따르면 하원 후 얼굴의 멍을 확인한 학부모가 교사가 원아의 뺨을 때렸다고 보고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전교조는 조사 과정에서 얼굴의 멍이 사건 약 한 달 전 발생한 부모 차량 교통사고와 관련된 상처로 확인됐으며, 교사가 원아의 얼굴을 때렸다는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원아의 손목을 붙잡아 제지한 행위가 별도의 신체적 학대 혐의로 이어졌다. A씨는 돌발 행동을 제지하고 자신과 다른 원아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으로 학대의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A씨의 행위를 사회통념상 객관적 타당성을 갖춘 정당한 보육이나 훈육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당시 교육현장의 상황과 교사에게 허용되는 재량, 학대의 고의 여부 등을 종합해 A씨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판결 직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죄 선고를 환영했다. 전교조는 이번 판결을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우려로 위축된 교육현장을 되살리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하는 계기로 평가했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정당한 생활지도가 무죄임을 확인받기까지 교사가 감내해야 했던 3년의 고통은 온전히 보상받을 수 없다”며 “교사의 생활지도가 필요하다면 교육 체계 내에서 객관적으로 다뤄야지, 아동복지법의 기계적 잣대로 교사를 범죄자 취급하며 학교 현장을 난도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미 전교조 세종지부장은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사 가운데 상당수는 불송치·불기소 등으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지만, 결론이 나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간 조사와 수사, 재판을 겪으며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와 사회적 평판 훼손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미 지부장은 “교사가 무분별한 신고와 학부모 민원을 우려해 학생 지도를 포기하는 ‘흐린 눈의 교사’가 되지 않고 소신껏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는 정당한 교육활동까지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면서 교육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에 세 가지 법·제도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교원의 교육활동 중 발생하는 정서적 학대와 유기·방임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적용을 제외하고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 등 교육관계법으로 규율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학생 본인과 다른 사람의 안전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신체적 제지를 체벌과 구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관련한 사안은 교육관계법 체계 안에서 교육감 의견 청취와 회복적 절차가 먼저 작동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개별 교사의 눈물겨운 법정 투쟁에 공교육의 존폐를 맡겨둘 수 없다”며 “교사가 안전하게 가르치고 아이들이 온전히 배울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아동복지법 개정 등 입법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특별자치시교원단체총연합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항소심 무죄 판결을 환영했다. 세종교총은 이번 판결이 한 교사의 형사책임 여부를 넘어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안전을 지키고 교육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이뤄지는 교사의 생활지도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남윤제 세종교총 회장은 “이번 무죄 판결은 교사가 학생을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해 취한 정당한 조치까지 범죄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판결”이라며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존중하고 교육활동의 특수성을 법과 제도가 제대로 이해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 회장은 “교사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 그것이 아동학대 신고와 형사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교실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교사가 학생을 보호해야 할 순간에 주저하지 않고 교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국가가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교총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교육활동과 아동학대 사이의 판단 기준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고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학생 보호행위가 법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종교총 임원진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교육활동 보장을 위한 아동학대 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판결은 아동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교육현장의 돌발 상황에서 교사가 취하는 신체적 제지를 어디까지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인정할 것인지라는 과제를 다시 부각시켰다. 항소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교사와 아동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지도 기준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국회와 교육당국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된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