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터넷신문=최대열기자] 정부가 임금 감소 없는 실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주 4.5일제가 한국 노동시장의 새로운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등 저비용 제조국의 가격·물량 공세 속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기업 경쟁력과 노동자의 삶의 질을 함께 지킬 수 있느냐가 제도 확산의 관건이다.
주 4.5일제와 주 36시간 근무 확산이 한국 노동시장의 새로운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기존 임금을 유지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기업은 생산성·원가·국제경쟁력 확보를, 노동자는 압축노동과 추가근무·고용불안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사진은 제조업 현장과 노동시간 단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다. [그래픽·이미지=대전인터넷신문·AI 제작]
고용노동부는 올해 ‘워라밸+4.5 프로젝트’를 통해 노사 합의로 임금 감소 없이 주 4.5일제 등 실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사업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 참여기업은 6월 말 224곳으로 당초 연간 목표 220곳을 조기 달성한 데 이어 7월 말에는 293곳까지 늘었다. 6월 말 기준으로는 50인 미만 기업이 참여기업의 67.9%를 차지했다.
노사발전재단도 일터혁신 상생컨설팅 등을 통해 기업별 노동시간 단축 모델과 생산성 개선 방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서울 구로구 의료용 기기 제조기업 ㈜에스엔제이를 찾아 주 36시간제 도입 준비 상황과 제조 현장의 생산성 유지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 기업은 2021년부터 주 38시간제를 운영해 왔으며 현재 실제 근무시간을 주 36시간으로 줄이면서 기존 임금을 유지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주 36시간제 정착 이후 생산성과 매출, 원가 등 경영성과가 확인된 단계는 아니어서 향후 운영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 36시간제의 경제적 의미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존 주 40시간에서 실제 근무시간을 36시간으로 10% 줄이면서 같은 임금을 지급한다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단순 계산상 시간당 임금비용은 약 11.1% 높아진다. 다만 제품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나 전체 생산원가가 곧바로 11.1% 상승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36시간에도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거나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면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비용 상승 압력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 4.5일제의 경제성을 판단할 핵심은 ‘몇 시간을 덜 일하느냐’보다 ‘줄어든 시간에도 기존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느냐’에 있다. 임금보전 방식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월 300만 원을 받던 근로자가 주 36시간제로 전환한 뒤에도 월 300만 원을 받는다면 근로자는 주당 4시간의 근로 제공 의무가 줄지만 회사는 이를 이유로 기존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구조다.
노사발전재단 자료에서 설명한 이른바 ‘유급 면제’ 방식은 단축된 4시간을 실제로 근무한 것으로 계산한다는 의미와는 구별된다.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주 40시간, 1일 8시간이다. 기업이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을 통해 이보다 짧은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는 것과 법정근로시간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 4.5일제 확산에 따른 새로운 노사쟁점이 발생할 수 있다. 주 36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한 사업장에서 주문 증가나 납기 대응 등을 위해 추가근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다.
주 36시간제 근로자가 특정 주에 총 38시간을 근무했다고 해서 추가된 2시간 전부가 곧바로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간 총근로시간뿐 아니라 특정일의 1일 8시간 초과 여부와 실제 근무편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또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주 36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한 근무에 별도 수당이나 보상을 하기로 했다면 그 약정에 따른 보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 근로가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가산임금 문제도 따르게 된다.
따라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임금보전 여부만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정근로시간을 넘어 법정근로시간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추가근무의 보상기준과 승인 절차, 실제 근로시간 기록방식을 노사가 사전에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더 큰 시험대는 국제경쟁력이다. 한국 제조업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은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가격·물량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비용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국가와 단순 가격으로 경쟁하는 데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OECD가 2026년 발표한 한국 조선산업 분석에서는 2024년 한국의 노동비용이 일본보다 약 5% 높고 중국의 약 2.3배 수준으로 제시됐다. 다만 OECD는 중국의 경우 제조업 자료를 사용했다고 별도로 밝히고 있어 이를 한·중 제조업 전체의 동일 기준 임금격차로 단순 비교하거나 일반화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국 제조업이 앞으로 ‘더 오래 일하고 더 싸게 만드는 방식’만으로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 중요한 변수다. 근무시간까지 줄어든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하거나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성 중심의 경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OECD의 ‘2026 생산성 지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고정 구매력평가(PPP) 기준 52.0달러로 미국 84.1달러의 약 62% 수준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단순한 근로복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 생산성 문제와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 주 4.5일제의 부담은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자동화와 연구개발, 추가 인력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중소 제조기업은 줄어든 근무시간을 설비투자나 신규채용으로 보완하기 쉽지 않다.
자동화 설비와 추가 인력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노동시간 감소분을 생산성 향상으로 흡수하지 못하면 생산량 감소나 납기 대응 부담, 추가채용 비용 또는 기존 근로자의 업무강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 사업 참여기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6월 말 기준 67.9%를 차지했다는 점은 중소기업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참여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들 기업의 생산성 개선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정책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시사한다.
지원 여력에 따라 기업 간 노동조건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생산성이 높고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에서는 임금을 유지하면서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기존 근무체계를 유지하면서 이른바 ‘좋은 노동조건’이 일부 기업과 근로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도 주 4.5일제가 항상 유리한 결과만 가져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기존 40시간에 처리하던 업무를 그대로 유지한 채 36시간 안에 끝내도록 한다면 근로시간 단축이 사실상 노동강도 상승으로 바뀌는 ‘압축노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규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퇴근 이후 전화와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 전자결재 등 사실상의 업무가 계속된다면 명목상 노동시간과 실제 노동시간 사이의 차이를 둘러싼 갈등도 예상된다. 직종 간 형평성도 풀어야 할 과제다. 사무·연구직은 근무시간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생산라인과 영업, 고객대응, 교대근무 직종은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같은 사업장에서도 직무에 따라 휴무와 근무시간이 달라질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의 핵심 수단으로 거론되는 AI와 자동화도 양면성을 갖는다. 자동화는 줄어든 노동시간을 기술로 보완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필요한 인력이 감소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시작한 생산성 혁신이 고용불안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주 4.5일제는 기업과 노동자 어느 한쪽에 비용과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정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AI·자동화와 스마트공장, 계획생산, 공정 표준화 등을 통해 불필요한 노동시간과 대기·재작업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 직무훈련, 노동시간 단축 초기비용을 연계 지원하는 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역시 새로운 생산방식에 필요한 직무교육과 공정개선에 참여하되 기술혁신이 일방적인 인력감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직무전환과 재교육, 인력 재배치 원칙 등을 노사가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다. 생산성 증가분이 기업에만 돌아간다면 근로자는 업무강도만 높아졌다고 느낄 수 있고, 반대로 생산성 개선 없이 임금보전과 노동시간 단축 비용을 기업만 부담한다면 제도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 기업에는 원가 절감과 품질·납기 경쟁력 향상이라는 성과가 돌아가고 근로자에게는 기존 임금 유지와 노동시간 단축, 합리적인 성과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노사 공존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 전후의 변화를 노사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노동시간과 생산량뿐 아니라 불량률과 재작업률, 납기 준수율, 부가가치, 노동강도, 이직률 등을 일정 기간 함께 살펴본 뒤 근무제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은 기업에는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고 근로자에게는 생산성 향상이 단순한 노동강도 상승 때문인지, 공정혁신과 기술투자에서 나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노사발전재단이 지난 10일 방문한 에스엔제이도 생산·출하 요청과 재작업 일정 등 출고 전 과정을 표준화하고 영업과 제조부서 간 계획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주 36시간제 시행 이후 실제 생산성 유지와 노동자의 업무부담 완화로 이어질지는 객관적인 성과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박종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실노동시간 단축은 기업의 업무방식과 생산과정을 함께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은 올라가는 마법 같은 일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라며 “㈜에스엔제이의 사례처럼 노사가 함께 해법을 찾는 다양한 모델이 현장에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주 4.5일제의 성패는 ‘36시간을 일하느냐, 40시간을 일하느냐’라는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중국 등 저비용 제조 경쟁국과 맞서야 하는 기업에는 줄어든 노동시간을 기술과 숙련, 공정혁신으로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과 생존의 문제다.
노동자에게는 생산성 향상이 압축노동이나 임금 감소, 고용불안으로 전가되지 않고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정당한 보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주 4.5일제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덜 일하고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넘어 더 짧은 시간에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과와 부담을 노사가 얼마나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대열 기자 daeyeol6364@hanmail.net